보수와 진보, 교육과 역사 인식 부족이 만든 한국 정치의 교착 상태
한국 사회와 정치를 둘러싼 최근의 대선 논의는 단순히 정권 교체나 정당 간의 권력 다툼을 넘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질서와 가치에 대한 전환점을 마련하는 중요한 시점임을 직시해야 한다.
2025년 6월 3일 조기대선은 해방 이후 가장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닌 대선이다.
한반도에서 냉전의 해체와 탈냉전 평화 시대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제 한국 정치의 구도는 냉전 기생 세력과 탈냉전 평화 세력 간의 대결로 재편되고 있다. 한쪽은 오랜 기간 냉전 구조에 기생하며 정권을 잡아온 유령 세력이고, 다른 한쪽은 평화와 변화를 중시하는 세력이다. 이번 대선은 어느 당이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치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김누리 교수는 냉전에 기생해온 정치 세력이 이미 사라지고 있는 냉전 질서를 정치적 토대로 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질서에 매달려 기득권을 지키려 하며, 민주주의의 성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세력에 대한 단죄와 함께 정치적 파산 선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들이 정치 무대에서 퇴장해야만, 냉전 해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 질서가 자리잡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애국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길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민의 힘 등 기존의 냉전 세력은 이미 대선 승리를 포기한 채 내부 권력 다툼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구조를 가졌는지를 보여준다. 제1야당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만 급급한 정치권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극도의 불신과 피로감을 안겨주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치적 변동이나 사회 갈등의 첨예화를 피상적으로만 인식하며, 그 이면에 깔린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이는 결국 우리가 역사를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 교육의 문제가 핵심이다.
우리는 고대사와 중세사에만 치중해 근현대사를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최근 과거, 즉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근현대사, 특히 20세기 한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사회적 합의도 부재하다. 김일성, 박정희 등 중요한 인물에 대한 평가조차 극단적으로 갈린다. 이로 인해 정치적 선동에 취약해지고,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갈등이 심화된다. 역사적 진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없으니, 극단적인 평가와 신화가 난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가 끝난다 해도, 사회를 지배하는 보편적 질서와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후기 파시즘 사회라는 개념도 논의되고 있다. 젊은 세대 중 극도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이 늘고 있는데, 이 역시 교육 과정의 심각한 결함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12년간의 교육을 받아도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되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난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국민들이 정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 언어와 사회를 규정하는 언어조차 거짓에 가득 차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우리는 진보와 보수가 경쟁하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보수는 어디에 있는지, 누가 보수인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국민의 힘을 보수, 민주당을 진보라고 단순화하지만, 이는 현실과 다르다.
보수주의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한국 정치와 사회가 불행한 가장 큰 이유는 좋은 보수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보수가 있어야 합리적인 진보도 함께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보수주의는 전통적 공동체, 민족, 역사, 문화를 중시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보수라고 불리는 세력은 공동체를 빨갱이로, 민족을 종북으로, 역사를 왜곡하거나 축소하며, 문화는 논외로 한다. 이들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 즉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외세와 영합하는 기회주의적 정파다.
진정한 보수는 김구 선생과 같은 인물이었으나, 그 자리를 수구가 차지해 80년간 이어져 왔다. 민주당은 사실상 중도 보수 정당에 가깝다. 민주당이 진보인 척하지만, 그 역할은 수구가 보수를 참칭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이재명 대표의 자세와 위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중도 보수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수구 세력이 정치 무대에 등장하는 것을 막는 길이다. 이로써 합리적 진보가 성장할 공간이 열린다. 이것이 민주당의 역사적 과제다.
젊은 세대가 극도로 보수적 성향을 보이는 현상도 교육 과정의 결함에서 비롯된다.
교실에서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되기 어렵게 만든 교육 체계가 문제다. 이번 선거 이후에는 반드시 선동가 판별 교육이 필요하다. 정치적 선동을 일삼는 자를 판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교실이 파시스트가 성장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 회복이 시급하다. 교사가 정치적 시민권을 가지지 못하면, 교실에서 파시스트가 계속 성장할 것이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 사회는 찬란한 성취와 어두운 현실이 공존하는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인구 감소와 출생률 저하 등 역사상 유례없는 현상도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 언어와 사회를 규정하는 언어가 거짓에 가득 차 있어 국민들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좋은 보수의 부재와 진정한 보수주의의 상실, 그리고 교육과 역사 인식의 부족이 한국 사회의 근본적 문제다. 이번 대선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한국 사회의 질서와 가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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